바로 어제인 1월 18일 밤, 어머니께서 방을 정리하다가 앨범을 들고 오셨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태어나서부터의 사진에서 개인적인 사진을 잘 안 찍게 된 중학교 이전까지의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부모님과 저와 동생이 둘러앉아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릴 때에는 눈이 컸었는데 요즘은 가재미 눈이라거나, 어릴 때부터 제가 동생을 많이 챙겼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저희 형제는 '이건 조작된 사진이다!!' 라면서 의혹을 제기하거나, 얼마 전에 돌아가신 큰이모부님의 사진을 보면서 큰이모부님을 추억하거나 하면서 새삼스럽게 사진에 담긴 추억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6학년 때(당시는 국민학교)의 졸업식 사진 한 장에 담긴 제 뒷자리의 여자아이를 보면서 어머니가 말씀했습니다. "이 아이가 널 참 좋아했었는데. 요즘도 이 아이 엄마 자주 마주치는데 잘 지내는 거 같더라." 그러면서, 당시 그 여자아이가 저를 좋아했다면서 제 어머니와 그 아이 어머니와의 당시 했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 아이는 6학년 시작 첫 날에 같이 전학을 왔었습니다. 그 아이는 43번, 저는 45번. 무려 전학생이 다섯명이나 되었으니까요. 전학 첫 날의 인상은 약간 차가운 인상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어깨 정도까지 오는 머리, 약간 작은 눈. 흰색 바탕의 봄옷. 키는 약 143cm 정도 되는 아이였습니다.
저도 그때 그 아이를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절 좋아했다는 사실은 신경을 쓰지 않았나 봅니다. 항상 툭툭 때리고, 핀잔을 주거나, 틱틱대거나 했던 그 아이기에 저는 제가 그 아이를 좋아하지만, 그 아이가 절 좋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겨울방학 전날에 집에 가기 전에 그 아이가 저를 학교 끝나고 보자며 저를 불러낸 일이 있었습니다. 절 볼때 항상 짓던 무서운(...-_-) 표정을 하고요. 하지만 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를 피해서 정문으로 나갔습니다. 그 아이와 제가 집으로 가는 방향은 학교 후문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학교 후문에 있었습니다. 정문으로 나와서 멀리 후문에서 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 아이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이쪽으로 간다~'.
13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가 이야기 해 준 잠깐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제 대학생이 된 저는 그 때 그렇게 그 아이를 피했던 일이, 어쩌면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시 진학하는 중학교가 남학교와 여학교라 갈라지게 된 다음에도,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까지도 전 그 아이의 남동생을 통해서 가끔가다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 그 아이를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 까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이렇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 곁에 있으려 할 때는 항상 저는 그 상대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으며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다가, 그 사람이 결국 지쳐서 떠나가면 그제서야 저는 그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항상 그래왔습니다.
저는 아직 그 아이의 이름도, 생일도, 당시 그 아이가 살던 집 주소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아이가 저한테 관심이 있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걸 피해서 도망쳤습니다. 사람의 사랑이라는 건 한 순간일 뿐이라고 철이 들 무렵부터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렇기에 그 아이가 제게 주는 관심을 피하려 했습니다. 제가 상처 입는 것은 두려워 하면서, 왜 남이 상처 받는 것에는 그렇게 둔감했는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전 그 아이에게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뿐입니다. 지금 그 당시에 그랬던 선택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이제 와서 그 아이의 마음을 모른 척 했던 걸 후회 해 봤자 어차피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고, 추억은 추억인 채로 놔 둬야 제 마음 속에 그 아이가 예쁜 모습으로 남아 있을테니까요.
Dico arrivederci J. SONG.
Il mio primo amante.
"Sono spiacente..."
어릴 때에는 눈이 컸었는데 요즘은 가재미 눈이라거나, 어릴 때부터 제가 동생을 많이 챙겼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저희 형제는 '이건 조작된 사진이다!!' 라면서 의혹을 제기하거나, 얼마 전에 돌아가신 큰이모부님의 사진을 보면서 큰이모부님을 추억하거나 하면서 새삼스럽게 사진에 담긴 추억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6학년 때(당시는 국민학교)의 졸업식 사진 한 장에 담긴 제 뒷자리의 여자아이를 보면서 어머니가 말씀했습니다. "이 아이가 널 참 좋아했었는데. 요즘도 이 아이 엄마 자주 마주치는데 잘 지내는 거 같더라." 그러면서, 당시 그 여자아이가 저를 좋아했다면서 제 어머니와 그 아이 어머니와의 당시 했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 아이는 6학년 시작 첫 날에 같이 전학을 왔었습니다. 그 아이는 43번, 저는 45번. 무려 전학생이 다섯명이나 되었으니까요. 전학 첫 날의 인상은 약간 차가운 인상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어깨 정도까지 오는 머리, 약간 작은 눈. 흰색 바탕의 봄옷. 키는 약 143cm 정도 되는 아이였습니다.
"이 애 엄마가 나만 보면 그랬어, 이 아이가 널 참 좋아하는데 너는 한 번도 제대로 봐 주질 않는다면서 많이 울기도 했대. 그러면서 너한테 우리 딸애 마음 좀 알아달라고 했었지."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때 그 아이를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절 좋아했다는 사실은 신경을 쓰지 않았나 봅니다. 항상 툭툭 때리고, 핀잔을 주거나, 틱틱대거나 했던 그 아이기에 저는 제가 그 아이를 좋아하지만, 그 아이가 절 좋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겨울방학 전날에 집에 가기 전에 그 아이가 저를 학교 끝나고 보자며 저를 불러낸 일이 있었습니다. 절 볼때 항상 짓던 무서운(...-_-) 표정을 하고요. 하지만 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를 피해서 정문으로 나갔습니다. 그 아이와 제가 집으로 가는 방향은 학교 후문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학교 후문에 있었습니다. 정문으로 나와서 멀리 후문에서 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 아이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이쪽으로 간다~'.
13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가 이야기 해 준 잠깐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제 대학생이 된 저는 그 때 그렇게 그 아이를 피했던 일이, 어쩌면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시 진학하는 중학교가 남학교와 여학교라 갈라지게 된 다음에도,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까지도 전 그 아이의 남동생을 통해서 가끔가다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 그 아이를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 까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이렇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 곁에 있으려 할 때는 항상 저는 그 상대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으며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다가, 그 사람이 결국 지쳐서 떠나가면 그제서야 저는 그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항상 그래왔습니다.
저는 아직 그 아이의 이름도, 생일도, 당시 그 아이가 살던 집 주소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아이가 저한테 관심이 있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걸 피해서 도망쳤습니다. 사람의 사랑이라는 건 한 순간일 뿐이라고 철이 들 무렵부터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렇기에 그 아이가 제게 주는 관심을 피하려 했습니다. 제가 상처 입는 것은 두려워 하면서, 왜 남이 상처 받는 것에는 그렇게 둔감했는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전 그 아이에게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뿐입니다. 지금 그 당시에 그랬던 선택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이제 와서 그 아이의 마음을 모른 척 했던 걸 후회 해 봤자 어차피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고, 추억은 추억인 채로 놔 둬야 제 마음 속에 그 아이가 예쁜 모습으로 남아 있을테니까요.
Dico arrivederci J. SONG.
Il mio primo amante.
"Sono spiac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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