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군에 있었을 때 들었던 대남방송 중에서 웃긴(...) 내용의 대남방송 내용을 대충 간추려서 적은 겁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할 의사는 전혀 없으며, 북한을 나쁘게 말하는 것도 아닌 그냥 웃자고 가볍게 쓴 얘기니 적당히 읽어주세요. 생각나는대로 쓰는 거라 비정기 연재입니다.
[INTRO]
이것은, 내가 군에 있을 때 임무로서 들어야 했던 한 대남 방송의 이야기.
평범한 군인이었던 내게 찾아온 신선한 충격. 감동과 눈물의 쓰나미.
서해바다 남조선 어부 이야기, 시작합니다.
1960년 ㅇ월 ㅇ일, 김 ㅇㅇ는 남조선 서울에 사는 어부였다.
어느날 김 ㅇㅇ는 여느 때와 같이 아들과 함께 고깃배를 몰고 서해 바다에 나가게 되었다.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지 물고기는 많이 잡혔고, 김 ㅇㅇ는 만선의 기쁨에 한참 취해 있었다.
하지만, 바다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그의 배는 백령도 근처에서 순식간에 폭풍우에 휘말리게 되었다.
"아들아, 조심하여라!!" - "네, 아버지!!"
그와 그의 아들은 폭풍우 속에서 배를 안전하게 몰기 위해 최선을 다 하였으나,
엄청난 폭풍우에 허름한 고깃배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고,
김 ㅇㅇ부자는 판자조각 하나에 목숨을 부지하고 표류하게 되었다.
"아아... 이제 죽는건가."
그렇게 김 ㅇㅇ부자는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추위, 그리고 배고픔에 몸을 떨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인천 쪽에서 배가 오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 아버지 배가 와요!!"
"뭐라고?"
"미군 배예요, 이제 살았어요!!"
김 ㅇㅇ부자는 온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하지만, 미군 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김 ㅇㅇ 부자의 근처를 그냥 지나가 버렸다.
"아... 미군 배는 그냥 가는구나..."
김 ㅇㅇ부자는 그렇게 다시 절망 속에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때.
"아버지, 북쪽에서 배가 내려와요... 저건 북조선 배가 아닌가요?"
"그래도 어찌하겠느냐, 한 번 불러 보자꾸나."
김 ㅇㅇ부자는 온 힘을 다하여 다시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배는 김 ㅇㅇ부자가 있는 곳으로 와 김 ㅇㅇ부자를 구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살았습니다."
"아닙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그렇게 김 ㅇㅇ부자를 구해준 인민군 해군은 백령도에 김 ㅇㅇ부자를 내려주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끝.
---친절한 내용 총정리: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
01. 한국 어부는 서울에 살기도 한다.
02. 서울에 살기도 할 뿐만이 아니라 고깃배를 끌고 서울에서 서해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03.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여의도 유람선 선착장은 과거에 고깃배가 드나드는 항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노량진에 뜬금없이 수산시장이 있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04. 모름지기 어부는 표류 상황에서 폭풍우 속에서도 판자 하나에 목숨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05. 미군 함정은 불러도 그냥 간다. 바다에 빠졌을 때 미군 함정이 다가오면 절대 부르지 말자. 설사 발 밑이 마리아나 해구라고 해도. 그리고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민간인이 그 배가 미군 함정인지 알아봤는지는 따지지 말자.
06. 1960년대에 미국은 군함을 몰고 중국으로 가기도 했다.
07. 한국 어부는 물에 빠진 사람을 안 구해줘도 덤덤하다. 실로 인생을 초탈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08. 북한 함정은 1960년대에도 한국 해군 또는 미군의 제지 없이 NLL을 마음대로 넘어서 한국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다.
09. 북한 함정은 NLL을 넘었을 뿐만이 아니라 백령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정박할 수 있었다.
10. 북한과 어떻게든 접촉했음에도 김 ㅇㅇ부자는 안기부에 끌려가지 않았다.
[INTRO]
이것은, 내가 군에 있을 때 임무로서 들어야 했던 한 대남 방송의 이야기.
평범한 군인이었던 내게 찾아온 신선한 충격. 감동과 눈물의 쓰나미.
서해바다 남조선 어부 이야기, 시작합니다.
[명작 대남방송 시리즈 #1] 남조선 어부 이야기
1960년 ㅇ월 ㅇ일, 김 ㅇㅇ는 남조선 서울에 사는 어부였다.
어느날 김 ㅇㅇ는 여느 때와 같이 아들과 함께 고깃배를 몰고 서해 바다에 나가게 되었다.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지 물고기는 많이 잡혔고, 김 ㅇㅇ는 만선의 기쁨에 한참 취해 있었다.
하지만, 바다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그의 배는 백령도 근처에서 순식간에 폭풍우에 휘말리게 되었다.
"아들아, 조심하여라!!" - "네, 아버지!!"
그와 그의 아들은 폭풍우 속에서 배를 안전하게 몰기 위해 최선을 다 하였으나,
엄청난 폭풍우에 허름한 고깃배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고,
김 ㅇㅇ부자는 판자조각 하나에 목숨을 부지하고 표류하게 되었다.
"아아... 이제 죽는건가."
그렇게 김 ㅇㅇ부자는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추위, 그리고 배고픔에 몸을 떨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인천 쪽에서 배가 오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 아버지 배가 와요!!"
"뭐라고?"
"미군 배예요, 이제 살았어요!!"
김 ㅇㅇ부자는 온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하지만, 미군 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김 ㅇㅇ 부자의 근처를 그냥 지나가 버렸다.
"아... 미군 배는 그냥 가는구나..."
김 ㅇㅇ부자는 그렇게 다시 절망 속에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때.
"아버지, 북쪽에서 배가 내려와요... 저건 북조선 배가 아닌가요?"
"그래도 어찌하겠느냐, 한 번 불러 보자꾸나."
김 ㅇㅇ부자는 온 힘을 다하여 다시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배는 김 ㅇㅇ부자가 있는 곳으로 와 김 ㅇㅇ부자를 구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살았습니다."
"아닙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그렇게 김 ㅇㅇ부자를 구해준 인민군 해군은 백령도에 김 ㅇㅇ부자를 내려주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끝.
---친절한 내용 총정리: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
01. 한국 어부는 서울에 살기도 한다.
02. 서울에 살기도 할 뿐만이 아니라 고깃배를 끌고 서울에서 서해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03.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여의도 유람선 선착장은 과거에 고깃배가 드나드는 항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노량진에 뜬금없이 수산시장이 있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04. 모름지기 어부는 표류 상황에서 폭풍우 속에서도 판자 하나에 목숨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05. 미군 함정은 불러도 그냥 간다. 바다에 빠졌을 때 미군 함정이 다가오면 절대 부르지 말자. 설사 발 밑이 마리아나 해구라고 해도. 그리고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민간인이 그 배가 미군 함정인지 알아봤는지는 따지지 말자.
06. 1960년대에 미국은 군함을 몰고 중국으로 가기도 했다.
07. 한국 어부는 물에 빠진 사람을 안 구해줘도 덤덤하다. 실로 인생을 초탈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08. 북한 함정은 1960년대에도 한국 해군 또는 미군의 제지 없이 NLL을 마음대로 넘어서 한국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다.
09. 북한 함정은 NLL을 넘었을 뿐만이 아니라 백령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정박할 수 있었다.
10. 북한과 어떻게든 접촉했음에도 김 ㅇㅇ부자는 안기부에 끌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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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 2007/10/04 20:05 Änderung/Löschung Antwort Adresse
...Nice Boat [?!]
윤소정 2007/10/04 23:52 Änderung/Löschung Adresse
아아, 좋은 전함이다...(??)